Categories
미분류

군사무기의 터닝포인트 M4 카빈

우선 M4 카빈이라는 용어 중에 카빈이라는 단어가 어색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군 복무를 마친 예비역들에게 카빈이라는 단어는 예비군 훈련장에서 발견된 제2차 세계대전의 옛 총구를 연상시키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가장 오래된 M1 카빈이기 때문이다.

카빈은 원래 카빈, 즉 군인들이 말을 타고 사용하는 총을 의미했다. 말을 타야 했으므로 긴 소총을 사용할 수 없어 운반이 용이하도록 통과 엉덩이를 잘랐다. 현대에 이르러 기병대는 무의미해졌지만, 짧은 화기의 필요성이 커졌고 카빈도 여전히 존재한다. 카빈(carbine)은 권총보다 장거리를 정확하게 쏠 수 있는 화기로 강력하지만 소총보다 짧고 가벼워 장교와 공수부대원의 화기로 제공됐다.

카빈은 제2차 세계대전에 상당히 적합한 총이었다. 고정 전선이나 참호에서 장거리 교전을 벌였던 제1차 세계 대전과 달리 제2차 세계 대전은 매우 역동적인 전쟁이었다. 숲과 도시, 산과 사막 등 다양한 지역에서 전투가 벌어지며 시야가 제한되고 이동성이 제한된다. 그래서 제1차 세계 대전에서는 소총 통이 대부분 30인치를 넘었지만, 제2차 세계 대전에서는 이보다 짧은 24인치가 주류였다. 다만 미국이 채택한 M1 카빈의 경우 18인치 배럴의 무게는 2.4kg에 불과했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의 교훈을 바탕으로 AK-47, M16 등 돌격 소총이 등장했고 5.56㎜ NATO 탄약 등 소형 탄환이 주류로 떠올랐다. M16의 경우 통의 길이는 20인치(50.8cm)였지만, 총의 단축에 대한 요건은 여전히 있었다. 권총 탄약을 사용한 기관단총도 사용했지만 권총 탄약이었기 때문에 사정거리와 동력은 여전히 약했다. 결국 현대식 카빈이 등장해 돌격 소총의 길이를 줄였다.

따라서 베트남 전쟁 중에는 M16의 카빈 소총인 CAR-15 계열이 등장하였다. CAR-15는 소총 길이의 절반인 10인치 길이의 접이식 엉덩이를 가진 모델이었다. 콜트 모델 607(CAR-15 SMG)을 시작으로 모델 608(CAR-15 서바이벌 소총), 모델 609, 그리고 610을 순차적으로 전선에 투입하여 특수부대원들이 사용하였다. 특히 모델 609는 공군(GAU-5/A), 모델 610은 육군이 채택했다. 특히 육군은 1966년 MAC-V/SOG 특수부대원들을 위해 XM177E1 2800정을 구입했다. 1967년에는 모델 610의 배럴을 11.5인치로 늘린 모델 629를 XM177E2로 채택하여 500정의 태블릿을 추가로 구입하였다.

베트남전 이후에도 M16 카빈은 계속 진화했다. 이제 총검을 장착하기 위해 배럴을 14.5인치로 늘린 모델 653이 등장했는데, 이것은 M16 A1에 해당하는 카빈 모델이다.미군 특수부대는 전후에 바로 이 모델 653을 구입하여 죽은 화기를 교체했다. 한편 미국은 욤키푸르 전쟁 당시 이스라엘군에 수천 대의 모델 653대를 지원으로 보냈는데, 이스라엘군은 이를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1980년대 초 M16 소총의 3세대 개량형인 M16A2의 출현과 함께 M16A2에 해당하는 카빈으로 다양한 모델이 등장하였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미 육군은 특수 목적의 모델 723(육군)과 727 소수를 구입했다. 한편 1984년 미군은 이미 콜트에게 대량 공급을 염두에 두고 M16A2와 최대한 양립할 수 있는 카빈 소총의 제작을 의뢰한 바 있다. 이에 따라 XM4(Colt 모델 720)가 등장했다. XM4는 M16A2와 같은 SS109(미군 M855) 탄약을 14.5인치 길이 1:7배럴에 수용하도록 설계됐다. 또한 M16A2와 마찬가지로 반복기능을 없애고 3점 사격기능을 설치하였다. XM4는 추가 정비를 거쳐 1994년 미군에 의해 M4 카빈(모델 920)으로 채택됐다.

놀랍게도, M4 카빈은 미 육군의 표준 소총으로 채택되었다. 즉, M16A2의 후계자로 M4가 선정되었다. M16A2와 같은 전신 소총보다는 짧은 카빈 소총이 표준이 되었다. 간단히 말해서 K2 소총 대신 K1A 기관단총이 모든 보병에게 주어졌다. 보병이 소총으로 싸우는 거리가 짧아지고 차량 안에서 이동하는 횟수가 많아졌기 때문에 카빈 소총으로도 충분하다는 논리다.

하지만 M4는 여전히 한계가 많았다. 그래서 M4A1이 등장한 것이다. 기존 M4는 M16A2와 마찬가지로 ‘안전-단일 사격-3점 화재로만 선택할 수 있어 반복 발사가 불가능했다. 이것은 총알이 낭비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 전쟁터에서는 커버 촬영 등 반복이 의미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M4A1에서는 3점 발사기능 대신 반복기능이 부활되었다.

피카티니 레일은 M4와 M4A1에서 채택되었다. 피카틴니 레일은 총에 각종 부속품을 부착하기 위해 만들어진 장치다. 지정된 표준에 맞는 마운트만 사용하는 경우 원하는 위치에 마운트할 수 있다. 레고처럼 다양한 조합이 가능하다. 우선 M4A1에는 운반용 손잡이 대신 플랫탑 레일이 장착됐다.

당초 M4A1과 SOPMOD 키트는 특수부대에만 보급됐다. 유용성이 입증된 만큼 일선 부대로 확대하고 있다. 이에 따라 2001년 대테러전 이후 미 육군은 M4와 M4A1을 탑재한 철로를 전방부대에 본격적으로 보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실행에 옮기자 M4 카빈 전체에 대한 엄청난 불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제기된 쟁점은 권력 침투 문제였다. 탈레반 병사들이 M4에 맞고 뒤로 넘어져 싸움을 벌였다는 보도가 여러 차례 나왔기 때문이다. M4가 사용한 M855 탄약은 원래 소련의 방탄복에 침투하기 위해 고안된 탄환이었다. 그러나 캐주얼한 차림의 아프간이나 이라크 테러리스트들도 총에 맞아도 큰 피해를 입지 않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문제는 실제로 1993년 모가디슈 총격전에서 불거졌다.

또 하나는 화기 자체의 신뢰성이다. 2008년 7월 13일, 와나트 전투에서는 미군 공수부대원 40명이 방어하는 전장이 탈리반 200여 명의 매복 공격을 받았다. 대다수의 적군을 방어하기 위해 미군은 치열한 전투를 벌였는데, 특히 M4 소총이 그랬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 연달아 사격을 가하자 몇 통의 통이 아예 터졌다. 이 증언에 따르면 30분 동안 12개 잡지만 소비했는데도 작동 불능인 총기도 있었다고 한다.

미군 수뇌부는 M4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공식 표명했지만 실제로는 M4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있어 M4 PIP 사업을 추진하면서 M4 교체 사업까지 추진했다. 미군은 2011년부터 차기 소총선정사업인 IC(개별카빈) 사업을 진행했으나 2013년 6월 이를 취소했다. 신형 소총이 M4에 비해 뚜렷한 이점이 없다는 이유였다.다시 말해 M4를 미군의 주력 소총으로 계속 사용하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