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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드골 항공모함의 크기와 기원

1930년대에 건설된 프랑스 마지노선은 1970년대 이전에 핵전쟁의 피난처로 운영돼 건물 자체를 보면 매우 좋은 시설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순간에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고 묵묵히 프랑스의 항복을 지켜봐야 했기 때문에 역사에 무의미한 요새로 기록되었다. 이처럼 무기나 장비, 군사시설을 의도한 대로 정확히 만들어 사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

당초 계획과 달리 제작 과정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없거나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직면한 경우를 ‘쇼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무기회사가 마지노선만큼 기록하여 프랑스에 남겨두고 다른 한편으로는 스승의 본보기로 삼은 군사 삽이 또 있다. 미국을 제외한 최초의 핵추진 항공모함 샤를 드골(R91)이 그 주인공이다.

프랑스는 냉전이 첨예한 1966년 미국이 주도하는 군사정책에 맞서 나토에서 철수하는 등 독자적인 군사운동을 유지하고 있는 대표적인 국가다. 2002년 다시 동맹으로 복귀했지만 여전히 그런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강한 자부심 때문에 최근 국제공동개발의 트렌드가 되고 있는 고성능 전투기는 물론 탄환부터 핵미사일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무기가 독자적으로 개발돼 사용되고 있다.

당연히 해군력이 강하다는 의지가 강하기 때문에 항모 전단 1대를 구성해 바다에서 작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이다. 그러나 프랑스는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 항공모함을 운용한 경험이 없었다. 1927년 영국의 도움으로 전함으로 개조된 실험용 항공모함 베어른을 소유했지만, 작전 능력이 부족해 전쟁 중에는 아무 역할도 하지 못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항모를 자체 건조하는 것이 어려워 미국과 영국이 사용하던 경항공모함을 딕스무드, 아르로마체, 라파예트 등 이전해 운용했다. 전후 복원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1950년대 중반부터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식민지의 관리와 강대국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는 더 나은 항모가 필요하다는 각오가 본격적으로 자체 전력개발에 나섰다.

이때 건조된 항공모함은 40여종의 다양한 항공기 운항이 가능한 완전 배수량 32,780t의 클레멘토급이다. 1961년 임관한 클레멘토와 1963년 실전 배치된 포슈는 중형 항공모함의 모범으로 여겨져 1997년까지 성공적으로 운용됐다. 이런 식으로 항공모함을 운용할 수 있는 능력을 축적한 프랑스는 1970년대 후반부터 이들을 따라갈 차세대 항공모함에 대한 개념적 연구를 시작했다.

항공모함의 위력은 궁극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항공기의 능력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F-4, F-14, F/A-18에서 볼 수 있듯이, 항공기의 크기는 그 성능에 비례하여 증가했다. 따라서 프랑스는 차세대 대형 항공기가 원활히 운항할 수 있도록 차기 항모의 배수량이 4만t을 넘어야 하며, 운영 효율을 배가하기 위해서는 핵추진장치를 설치해야 한다고 봤다.

동력이 핵추진이라면 건설비는 늘어나지만 항공모함이나 전략잠수함 등 장기 작전을 펼치는 군함은 장점이 많다. 미국은 최초의 핵추진 항공모함인 CVN-65 엔터프라이즈를 건조하고 난 뒤 예측불허의 건조비용에 놀라 후계자를 재래식 전력으로 바꿨다. -68 니미츠로부터 핵 추진력을 재입양했다.

이처럼 프랑스의 위상 제고를 의심하지 않았던 신형 항공모함은 1989년 4월 DCNS 브레스트에서 설계, 착공했다. 그러나 그 결과 공사비는 당초 예상치의 3배가 넘는 35억 달러에 달했고, 제작기간은 11년 이상이 걸렸다. 6년 만에 45억 달러에 건조될 수 있었던 니미츠급 항모 전원의 2배가 넘는 전능력을 보유한 것과 비교하면 완성될 때까지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지 예측하기에 충분하다.

핵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애초부터 공사비가 많이 들었지만 경기침체로 충분한 예산 없이 공사를 시작한 것이 착오의 시작이었다. 공사 도중 도난당한 건물처럼 공사 중단과 정지가 수시로 반복돼 처음부터 완공일을 맞추기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했다. 이 외에도 삽질 등으로 나중에 손댈 수 있을 만큼 큰 사건·사고가 발생하면서 재설계와 개보수 작업이 수시로 이뤄졌다.

드골은 비용절감을 이유로 잠수함에서 사용하는 기존 K15 원자로 2기를 설치했다. 문제는 별다른 보강 없이 출력을 늘렸을 때 방사능 누출량이 예상치를 초과한 것으로 드러나 승무원의 건강에 대한 우려를 낳았다는 점이다. 선체가 거의 완성에 가까워지면서 원자로를 새로 개발해 교체하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에 결국 차선책은 차선 방패를 보강하는 것이었다. 덕분에 배수량이 5000t가량 늘어나 운행 속도에 영향을 미쳤다.

프랑스는 핵 분야에서 뛰어난 기술과 경험을 가진 나라지만 드골(De Gaulle)이 건설되었을 때는 계획 단계부터 매우 쉬웠다. 결국 드골은 나중에 안전을 위해 원자로 가동 효율을 의도적으로 낮췄고, 1년 중 65% 정도만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이에 따라 연료 교체 주기가 빨라지고, 유지비용이 비싸지고 있다. 그러나 이는 제작 기간 동안 지속되고 있는 고난의 시작에 불과했다.

드골은 1994년 발사돼 다양한 실험에 들어갔다. E-2C 조기경보 때문에 활주로가 짧은 것으로 확인되면서 갑판을 4m 연장했다. E-2C는 오래 전에 운항조건이 공개된 선박으로, 같은 환승선박 방식을 사용하는 비슷한 규모의 클레멘토 클래스가 여전히 활동 중이어서 사전에 시험할 시간이 충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낭패를 부렸으나 이것으로 그 괴로움이 끝나지는 않았다.

그런 만큼 드골은 무기로서 실패라고 할 수는 없지만 프랑스의 과거 경험과 기술을 감안할 때 건설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들은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삽질을 하며 조롱당할 만큼 그런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반복됐다는 것은 무기를 만들기 어렵다는 뜻이다. 사실 무기가 아니더라도 성공은 실패나 고난을 겪지 않고서는 달성하기 어렵다. 아마도 이런 실패의 경험도 나중에 생각해 보면 소중한 자산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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